이곳의 지리적 특성은 북으로는 장봉산이 북풍을 막아주고 그 기슭으로 옥천이 흐르고, 남으로 태평양위로 오륙도가 보이는 곳이다. 일제강점기때 방어의 요충지로 포진지가 있었고 모두 11개의 굴이 있었지만 허물어 버렸다. 43cm 대형포는 광복후 미군에 의해 부수어졌고 진지터는 굴안에 남아 있다. 2005년 11월 용호농원에 거주하던 한센씨 가족은 62가구 119명 이었다. 이들의 치료와 보호는 1909년 감만동 한센병원에서 시작했다. 초창기 선교사들의 관심으로 1911년 부터 감만동 상애원(相愛園) 한센병원이 만들어지고 이들의 재활과 치료를 맡았다. 하지만 일본 군국주의의 득세는 신앙의 전파와 이와 연계된 의료사업에 지장을 가져왔다. 1940년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당시 군용지였던 용호동 산 2번지 부근인..
1973년 패총이 발견 되면서 신석기 시대부터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1876년 개항당시 이 섬에 인가가 예닐곱채 쯤 있었다는 기록, 어느 해 대구의 황금어장으로 각광 받으며 돈이 몰렸다. 한국전쟁 이후 악명 높은 밀수왕국으로 불리고 1967년 정부가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섬에 발전기를 설치하고 어업자금도 융자하여 바다목장 양식장 등으로 새로운 면모를 갖춘 마을로 활기를 찾지만 1968년 해양대학교 입주가 결정나고 주민들이 뭍으로 떠나야 했다. 1970년 3월 섬을 비울 때만 해도 아치섬에는 108세대 680여명의 주민들이 살았다. 본교였던 조도국민학교가 폐교조치가 있었고 그 해 5월에 학교 문을 닫았다. 아치섬의 어원에 대한 이야기는 다양하다. 1740년 간행된 에는 고지도, 동백..
영도구에는 개안마을, 석말추마을, 대풍포마을 등 7곳에 어촌이 발달했다. 남항동의 개안 마을은 해안을 매립하면서 갯벌을 메워 그 위에 형성된 마을이다. 갯바닥을 메워 만들어진 마을이라 하여 지명이 유래되었고 현재의 위치는 남항동 3가 이 있던 곳이다. 50여년 전까지만 해도 10여호의 민가가 있었고, 40여년 전에 마을의 흔적이 없어졌다. 석말추 마을은 남항동의 해안에 입지하였으며, 지명은 해안에 분포한 이암離岩에서 비롯 되었다. 석말추 앞 바다는 어장으로 유명하였으며 석말치, 섬돌추, 성발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평동의 대풍포 마을은 매축되기 이전에 있었던 마을이다. 조선시대 해안지역의 만입부에는 바람을 기다리는 곳, 혹은 바람을 대피하는 곳이라는 의미의 '대풍待風'-- 이라는 접두어를 가진 지명이 많..
1. 용두산타워 : 1973년 서울타워 보다 2년 앞서서 전국체전 기념으로 만들었다. 이때 꽃시계도 함께 만들었다. 상층부는 다보탑 모양을 땄다. 1955년 12월에 시비, 도비, 시민성금을 모아 세워진 이순신 동상이 있다. 1968년 4월 27일 세워진 서울 광화문 이순신 동상 보다 앞선다. 일제 시대는 신사가 있던 자리다. 해방 후 주변지명을 충무동, 광복동으로 바꾼 이유는 일제의 기를 누르기 위함이다. 2. 부산근대역사관 : 1921년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으로 건설되었다. 1910년 마산에 출장소 세웠다가 1921년 부산지점 완성되자 마산지점이 폐쇄 되었다. 모두 여덟 군데의 지점이 세워졌고 남아 있는 곳은 목포, 부산 두 군데이다. 목포도 근대역사 박물관으로 쓰인다. 동양척식 주식회사는 일본의..
In Korean spirituality, the soul and spirit of a person is defined as Hon-Baek. Hon is the soul that rises to heaven, while the Baek is the spirit body that is interred underground. Jongmyo shrine was dedicated to hold ancestor worship ceremonies led by the incumbent Joseon King to please the Hon-Baek, the soul and spirits of the deceased kings and queens of the Joseon Dynasty. During an elabora..
1350년 부터 왜구가 창궐한다. 1380년 이성계가 남원에서 토벌했다. 1389년 위화도 회군을 같이한 박위로 하여금 대마도 정벌하게 한다. 1396년에 정벌 명령 있었고, 1419년 세종때 이종무가 정벌하고 회유책도 쓴다. 경상도에만 왜인 2천명이 정착한다. 1426년 삼포(부산포: 지금의 부산 동래구, 제포: 창원시 진해구, 염포: 울산 방어진)를 연다. 1510년 삼포왜란 발생하고 왜관을 폐쇄한다. 1512년 제포왜관 연다, 1521년 부산포왜관을 연다. 1544년 왜인들의 난동이 있어 부산포 왜관만 설치 운영한다. 초량왜관 : 임란 후 1607년 조선통신사-->1609 광해 1년 기유약조로 두모포 왜관(부산동구 수정동) 설치되었다. 두모포 왜관이 좁아서 1678년 초량왜관 설치된다. 용두산일대 ..
Few countries in the world manufacture their own paper to record their history. None can make paper that will last more than a thousand years, as traditional Korean paper Hanji does. The world`s oldest woodblock printed text, the Spotless Pure Light Dharani Sutra was printed on Hanji paper some 1,300 years ago, between 704 and 751. Hanji paper, made from the inner bark of the Dak tree, has alm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