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 받침대가 될 뻔한 중성리 비석 포항 중성리신라비는 2009년 5월에 우연히 발견되어 보물을 거쳐 국보 318호로 지정된 비석이다. 이 조그마한 비석은 지금까지 발견된 신라비석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인 신라 지증왕 2년(501, 신사년 辛巳年)에 만들어진 것으로 신라 초기 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가치가 매우 큰 비석이다. 그리고 이 비석은 신라가 국가체제를 이룩하는 과정을 밝히는 역사적 의의는 물론 그 발견경위와 조사과정 등 문화유산의 보존과 보호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는 문화유산이다. 이 비는 2009년 5월 11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중성리 167-1번지 흥해 중앙교회 앞에서 발견되었다. 당시 이곳에서는 포항시에 의해 주민생활 개선사업으로 실시한 도로개설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한자는 대표적인 표의문자 이다. 해를 뜻하는 일日 자와 달을 뜻하는 월月 자는 해와 달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 그런다음 만들어진 글자를 활용해 새로운 글자를 추가 하기도 했다. 밝을 명明 자는 해와 달을 합쳐서 만들었다. 중국인은 상형, 지사, 회의, 형성, 전주, 가차 등 육서라는 여섯가지 방법을 고안해서 새로운 글자를 만들었다. 한 일一( 일) 자 처럼 획수가 적은 글자도 있지만, 비근한 예로 건물이나 관청을 뜻하는 청廳은 25획으로 이루어져 기억하기도 쓰기도 쉽지 않다. 울창할 울鬰 자는 29획으로 보는 것 만으로 머리가 아프다. 청나라 강희제 때 편찬된 에는 약 4만 7000자의 글자가 수록되어 있다.표의문자인 한자의 특성상 시대의 흐름과 함께 계속 새로운 글자를 추가했다.영어 card 를 표..
IT 혁명이 가져온 가장 근본적이고 위협적인 변화는 바로 정보 권력의 이동이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지식과 정보는 철저히 중앙집권적이었다. 국가 기관,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거대 주류 언론, 대학과 전문가 집단이 정보를 독점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필터링하여 하향식으로 배급했다. 대중은 수동적인 정보의 수용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초고속 인터넷망과 웹 브라우저, 검색 엔진(야후, 네이버, 다음)의 등장은 이 철옹성 같던 지식으 피라미드를 해체해 버린다. 누구나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것만으로 전 세계의 정보와 최신 뉴스에 빛의 속도로 직접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 포털 사이트의 등장과 함께 폭발적으로 성장한 다음 카페, 프리챌, 디시인사이드 같은 커뮤니티는 대중을 단순한 '정보 수용자' 에..
1998년 2월, 국가 부도라는 폐허 위에서 출범한 김대중 정부(국민정부)가 내건 '정보화 시대' 를 향한 집념은, 대한민국이 생존을 위해 선택한 유일한 비상구이자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일종의 혁명적 선언이었다. 1960년대부터 한국 경제를 견이니해온 중화학 공업과 수출 주도의 재벌 중심 '굴뚝 산업' 이 외환위기로 무너져 내린 자리에서, 국가는 새로운 자본축적의 엔진으로 IT산업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2000년 초반 한국 사회를 휩쓴 IT 혁명은 단순한 산업 정책의 전환이나 경제 회복의 수단에 머물지 않았다. ADSL로 대표되는 초고속 인터넷망이 전국 단위로 마치 혈관처럼 깔려 나갔고, 집집마다 개인용 PC가 보급되며, 테헤란로를 중심으로 벤처기업들이 폭발적으로 팽창했다. 짧다면 짧을 수..
"하면된다" 이 네 글자는 한국 사회에서 세대를 초월해 격언처럼 통용된다. 취업에 실패한 청년에게, 사업이 기울어가는 자영업자에게, 성적이 오르지 않는 학생에게 기성세대가 건네는 조언의 최종 병기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네 글자는 그저 하늘에서 떨어진 격언이 아니다. 이것은 1970년대 대한민국이라는 특수한 시공간에서 국가가 설계하고, 마을이 경쟁하며 개인이 내면화한 하나의 역사적 산물이다. 그 역사의 이름이 바로 새마을운동이다.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은 지방장관회의에서 "농촌의 자조 노력을 진작시킬 방안을 연구하라" 고 지시하며 처음으로 '새마을' 이라는 이름을 꺼냈다. 그해 10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정부는 전국 33,267개 마을에 시멘트 335포씩 일관 배분했다. 조건은 단순했다..
X세대는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가난이라는 단어를 흑백사진 속의 먼 옛날이야기로 밀어내며 자랐다. 앞선 세대가 흙먼지 날리며 비포장도로를 걸으며 조국 근대화의 바퀴를 돌렸고, 거리에 매캐한 최루탄 냄새를 풍기며 민주주의의 문을 열어젖혔다면, 197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선배들이 닦아 놓은 단단한 아스팔트 위에서 청소년기를 시작했다. 집집마다 놓인 컬러TV에서는 총천연색의 쇼 프로그램이 쏟아졌고, 일요일 아침이면 디즈니 만화영화가 방송되었다. 이들의 뇌리에 새겨진 최초의 거대한 집단 기억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이다. 하늘을 수놓은 오륜기와 전 세계에서 몰려든 푸른 눈의 외국인들을 보며, 이 세대는 "우리도 이제 세계 무대의 중심에 섰다"는 생각에 들떴다. 부모 세대처럼 끼니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선..
1988년 9월 17일, 서울올림픽 주경기장, 그룹 코리아나가 부른 '손에 손 잡고' 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160개국에서 온 1만 3000여 명의 선수단이 잠실의 트랙 위를 행진했다. 당시 유엔 회원국보다 1개국 더 많은 숫자였으며, 냉전의 상징이었던 1980년 모스크바 대회와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의 반쪽짜리 오점을 씻어낸 세계사적 해빙의 순간이었다. 특히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이 성화 봉송 주자로 주경기장에 들어선 장면은, 식민지의 참상에서 출발하여 세계적인 올림픽 개최국으로 도약한 한국 현대사의 궤적을 압축하는 상징이었다.한국은 이 대회에서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로 종합 4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1988년 서울올림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