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된다" 이 네 글자는 한국 사회에서 세대를 초월해 격언처럼 통용된다. 취업에 실패한 청년에게, 사업이 기울어가는 자영업자에게, 성적이 오르지 않는 학생에게 기성세대가 건네는 조언의 최종 병기이기도 한다. 그런데 이 네 글자는 그저 하늘에서 떨어진 격언이 아니다. 이것은 1970년대 대한민국이라는 특수한 시공간에서 국가가 설계하고, 마을이 경쟁하며 개인이 내면화한 하나의 역사적 산물이다. 그 역사의 이름이 바로 새마을운동이다.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은 지방장관회의에서 "농촌의 자조 노력을 진작시킬 방안을 연구하라" 고 지시하며 처음으로 '새마을' 이라는 이름을 꺼냈다. 그해 10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정부는 전국 33,267개 마을에 시멘트 335포씩 일관 배분했다. 조건은 단순했다..
X세대는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가난이라는 단어를 흑백사진 속의 먼 옛날이야기로 밀어내며 자랐다. 앞선 세대가 흙먼지 날리며 비포장도로를 걸으며 조국 근대화의 바퀴를 돌렸고, 거리에 매캐한 최루탄 냄새를 풍기며 민주주의의 문을 열어젖혔다면, 197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선배들이 닦아 놓은 단단한 아스팔트 위에서 청소년기를 시작했다. 집집마다 놓인 컬러TV에서는 총천연색의 쇼 프로그램이 쏟아졌고, 일요일 아침이면 디즈니 만화영화가 방송되었다. 이들의 뇌리에 새겨진 최초의 거대한 집단 기억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이다. 하늘을 수놓은 오륜기와 전 세계에서 몰려든 푸른 눈의 외국인들을 보며, 이 세대는 "우리도 이제 세계 무대의 중심에 섰다"는 생각에 들떴다. 부모 세대처럼 끼니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선..
1988년 9월 17일, 서울올림픽 주경기장, 그룹 코리아나가 부른 '손에 손 잡고' 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160개국에서 온 1만 3000여 명의 선수단이 잠실의 트랙 위를 행진했다. 당시 유엔 회원국보다 1개국 더 많은 숫자였으며, 냉전의 상징이었던 1980년 모스크바 대회와 1984년 로스앤젤레스 대회의 반쪽짜리 오점을 씻어낸 세계사적 해빙의 순간이었다. 특히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이 성화 봉송 주자로 주경기장에 들어선 장면은, 식민지의 참상에서 출발하여 세계적인 올림픽 개최국으로 도약한 한국 현대사의 궤적을 압축하는 상징이었다.한국은 이 대회에서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로 종합 4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1988년 서울올림픽..
개신교는 신자 수 늘리기 뿐 아니라, 교회의 외형 확대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교회 지출의 40%를 교회 건물에 사용하면서, 빚을 내서라도 대형교회를 짓는 데 골몰했다. 누구나 '건물주' 를 꿈꾸는 시대에 교회 역시 대열의 선두에 섰다.'건물주' 로서 '조물주' 를 모셔야만 하느님이 기뻐하실 거라 생각한 것일까? 바벨탑의 교훈이 무색하게, 개신교 대형교회는 높디높은 '교회 건물 짓기' 경쟁에 몰두해 왔다. 온라인 시대가 도래 하면서, 개신교 신자는 인터넷을 통해 어디서든 예배를 볼 수 있다. 이미 '일상이 성소이자 예배' 인 시대가 되었다.런던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양희송은 영국 더럼대학의 피트 위드 교수의 '액체 교회' 와 '고체 교회' 개념을 소개한 바 있다. 고체 교회는 움직이지 않는 교회 건물에서..
개신교는 140여 년이라는 짧은 전래 기간에도 불구하고, 신자 수가 대한민국 인구의 30%를 넘나들 만큼 '급성장'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교회 수뿐 아니라, 해외 파견 선교사 수에서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1만 2000 여명)를 차지할 정도로 '선진 대국'이 되었다.필리핀을 제외하면, 아시아에서 한국의 개신교도 비율이 가장 높다. 짧은 선교 역사를 고려하면 더욱 대단한 수치다.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이라 할 수 있는 중국과 일본의 개신교도 비율이, 한 자릿수에 머무는 상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일본은 천주교와 개신교 신자를 모두 합해도, 전체 인구의 1%를 넘지 않는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개신교 성장사는 '세계 선교사의 기적' 으로 불릴 만하다.개신교는 어떻게 한국에서 '기적 같은 성장'..
우리 사회에 개신교가 전래된 시기는 19세기부터 여러 접점이 있었지만, 대다수 개신교회는 1884년 9월 북장로회 미국인 선교사, 호러스 알렌의 조선 입국을 공식 전래 시점으로 보고 있다.전래 당시 큰 '박해'를 당한 천주교와 달리, 개신교는 '환대'를 받았다. 개신교가 환대를 받은 계기는 2 가지였다. 1884년 갑신정변때 중상을 입은 민영익을 선교사 알렌이 치료해서 완쾌시킨 일과 1885년 을미사변 때 독살을 우려한 고종의 식사와 호위를 여러 선교사가 맡은 것이 결정적 계기였다.조선 왕실과 미국인 선교사와의 우호 관계 속에, 배제 · 이화 · 정신 · 경신 같은 개신교 계열 사립학교가 연이어 문을 열었다. 1910년 당시 인가된 학교의 35%가 '미션스쿨' 이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교육' 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