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우리에게도 한반도 문화에 대한 자신감이 매우 부족하던 시절이 있었다. 오죽하면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를 한(恨)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 패배주의적 사고에 익숙해 있었을까.이것은 근대 시절 처절한 실패로 일제 강점기를 경험했고, 독립 직후에는 나라가 둘로 갈라져 6 ·25 전쟁까지 치러야 했던 안타까운 역사가 만들어낸 결과다.그렇다면 지금은 극복되었을까? 한반도 남부에 위치한 대한민국에서는 완전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 극복된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물질적 문화적으로는 선진국 수준에 올랐으니까. 반면에 북한은 글쎄다, 경제는 철저한 실패에 직면했는데도 핵 강국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것이 극복을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쨌거나 어떤 식으로든 패배주의를 극복해 가는 다양한 모습이 한반도의 현대사라고 ..
런던, 뉴욕, 파리, 홍콩 등에서 이루어지는 세계적인 경매 회사 소더비와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수많은 동아시아 유물이 출품되고 있다. 이 중 간다라 불상, 중국 불상, 일본 불상은 단연 인기가 높으며, 가격도 한국 불상보다 비싸지 않다. 2020년 5월 간송미술관이 재정 문제가 심각하다면서 보물로 지정된 38센티미터 통일신라 시대 과 19센티미터의 삼국 시대 등 두 점의 불상을 경매에 올린 적이 있다. 당시 경매를 주관했던 곳은 한국의 2대 미술경매 회사 중 하나인 케이옥션이었다. 두 불상의 경매 예상 가격은 각각 15억 원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응찰자가 없어서 유찰되고 말았다. 아마도 간송이라는 이름값에 대한 부담과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의견 때문이었을 것이다.그러자 같은 해..
석가모니(기원전 560년경~480년경)가 열반한 후 그가 창시한 불교는 인도를 넘어 주변 국가로까지 퍼져 나갔다. 그 과정에서 지금의 인도 북부와 파키스탄, 아프카니스탄 일부를 지배하던 쿠샨왕조에서 1세기 후반부터 부처의 모습을 표현한 조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간다라 미술이자 불상의 첫 등장이다. 간다라에서 불상이 만들어지기 이전 석가모니를 표현한 것으로 수투파라고 불리는 불탑이 있다. 스투파는 석가모니의 사리를 보관하는 탑이자 남다른 상징성을 지고 있는 건축물이지만 석가모니 자체는 되도록 묘사하지 않았다. 존귀한 분을 감히 표현할 수 없었기에 대신 오랜 동안 큰 발자국이나 빈 대좌 등으로 표현했을 뿐이다. 그런데 인도의 서북부, 지금의 파키스탄 페샤와르 일대의 넓은 지역을 ..
청동 거울 중에 으뜸은 정밀하고 복잡한 무늬가 새겨진 으로 '정문경' 또는 '잔무늬거울' 이라고도 부른다. 1960년대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인근에서 참호를 파던 훈련병이 발견했다. 한 눈에도 빼곡히 새겨 있는 세밀한 문양은 사람의 손으로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정밀하다. '고대의 나노기술' 이라고 일컬어지는 거울의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수 차례 복원이 시도되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현대의 기술로도 완벽히 복원이 어려운 것이다.왜 수많은 청동 거울 중에 이 정문경을 으뜸이라 하는 걸까?세공 기술에 그 비밀이 있다. 은 지름이 21cm인 면에 세 개의 큰 원으로 구획을 나누고 100개의 동심원과 0.3mm 간격으로 1만 3,000개에 이르는 가는 선이 새겨져 있다. 이 만들어진 가장 가능성 있는..
박물관 관람객들이 제일 많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서 있는 곳, 바로 청동 거울 앞이다. 유물 설명 카드에는 분명 청동 거울이 라고 되어 있는데 둥근 모양 말고는 거울과 비슷한 구석을 찾아 볼 수 없다. 청동 거울을 '거울' 이라고 느낄 수 없는 이유는 얼굴을 비추어보는 앞면이 아니라 뒷면이 보이게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앞면은 거울의 기능을 위해 매끄럽게 다듬었기 때문에 별다른 특징이 없다. 반면 뒷면에는 여러 가지 문양을 새겨 넣어 장식했기에 독특한 문양과 형태를 지닌 뒷면이 보이게 한것이다. 그것 말고도 거울이라고 느낄 수 없는 이유는 또 있다. 은백색으로 반짝반짝 빛이 나고 비추면 얼굴이 보여야 하는데 표면이 푸른색으로 뒤덮여 있어 '이게 거울이라고?' 를 반문하는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왜 이것을 ..
은 최악의 발굴이라는 오명을 얻었지만 출토된 유물은 전부 매우 특별했다. 이에 백제에 관한 많은 조사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2009년에 발간된 '무령왕릉 신보고서' 를 시작으로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그중 백제의 상장 의례에 관한 연구도 진행되었는데, 발견된 묘지석 2매에 무덤 주인인 무령왕은 523년에 사망하여 527년에 무덤에 안치되고, 왕비는 526년에 사망하여 529년에 안치되었다는 기록을 발견했다. 이를 통해 백제는 주검을 바로 매장하지 않고 장례 준비나 애도를 위한 기간을 27~28개월 두어 그 뒤에 매장하는 빈장이 행해졌음을 알게 되었다. 무령왕의 빈전(국상 때, 상여가 나갈 때까지 왕이나 왕비의 관을 모시던 전각)지로는 공주 정지산으로 추정했다. 목관재의 정확한 크기와 상태, 과학적 분..
2021년 발굴 50주년을 맞이하여 출토된 유물을 한자리에 모은 뜻 깊은 특별전이 국립공주박물관에서 개최되었다. 1971년 발굴된 백제 무덤 중 유일하게 그 주인공을 알 수 있는 은 송산리 6호분의 배수구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1,500년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온전히 보존되어 있었다. 이 발견으로 공백으로 남아있던 백제 역사가 채워 질 수 있었다.5~7세기 백제 무덤 대부분은 돌로 돌방을 만들고 그 위를 흙으로 덮어 쌓는 '굴식 돌방무덤' 이었다. 그런데 은 당시 중국 남조에서 성행하던 '굴식 벽돌무덤' 양식이다. 입구에는 머리에 쇠로 만든 뿔이 있고 몸의 양쪽에 불꽃 같은 날개가 있는 상상의 동물 진묘수가 석수로 자리해 있다. 그 앞에는 지신에게 묘소를 쓸 땅을 매입하는 문서를 작성..
유물의 연대를 추정하는 방법에는 두 종류가 있다.상대적 연대 결정법(relative dating method)과 절대적인 연대 결정법(absolute dating method)이다. 상대연대는 고고학자들이 고대의 다양한 시기를 구분하기 위해 사용하는 연대 체계를 말한다. 주로 유적지에서 발견되는 유물인 토기를 기반으로 한다. 절대 연대는 우리가 쓰는 달력을 토대로 구체적 연대를 제시한다. 선사시대의 그릇이 하나 있다. 만약 미케네 시대라고 가정하자. 상대 연대 결정법에 따르면 후기 헬라딕 3기 그릇이지만 절대 연대 결정법에 따르면 기원전 1400년 것이 된다. 고고학연구자들에게 상대 연대가 더 유용하다. 하지만 도달하려는 것은 절대 연대이다. 일반인에게도 절대 연대가 더 이해 하기 쉽다. 상대 연대가 ..
우리나라는 고래잡이가 금지된 나라다. 그럼에도 고래가 얼마에 팔렸다는 기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반복된다."바다의 로또 길이 5m 포항 밍크고래, 5400여만 원에 팔렸다"이런 제목을 보며 사람들은 고래는 어획의 대상이고, 희귀하기 때문에 비싸게 거래된다고 여긴다. 실상은 다르다. 어부들은 고래를 사냥하지 않는다. 적어도 법적으로 그렇다. 고래는 혼획(混獲)으로 잡혔을때만 유통될 수 있다. 다른 어종을 잡다 '우연히' 함께 걸린 경우에만 시장에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고래가 '잡히면' 어업인들은 해양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그러고는 창이나 작살 같은 포경 흔적이 있는지 검사를 받는다. 고의로 죽인 흔적이 없을 경우에만 혼획이나 부수 어획(附隨漁獲)으로 인정된다. 고래는 그물에 걸려 죽는 경우가 많다. 함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