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벚꽃의 원산지에 대한 논쟁이 한일 간에 있었다. 1962년 4월 19일 ` 일본국화 왕벚나무의 원산지는 제주도` 라는 기사가 동아일보에 실렸다. 다음에 4월에도 ` 왕벚나무 원산지는 역시 한라산 ` 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일본에는 자생하는 벚나무가 없었다. 1965년 한국정부는 한라산에 자생하는 왕벚나무를 천년 기념물로 지정했고 원산지 논란은 끝나는 것 처럼 보였다. 벚나무 종류는 다른 벚나무 종과 쉽게 교잡 할 수 있어서 그 기원을 밝히기가 어렵다. 이리저리 퍼져나간 종류만 200여종이 있다. 일본은 본국과 한국에서 자라는 왕벚나무 모두 재배종 이라 했다. 한라산에 자생 왕벚나무가 있는 것은 맞지만 이 역시 일본에서 교잡해서 생겨난 재배종 이라고 맞선다.1960년대 들어 정권을 잡은 박정희 ..
웅천에서는 조선전기 부터 분청사기와 백자를 생산했다. 웅천 가마에서 생산해서 앞의 포구를 통해서 일본에 수출했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납치해서 데려갔다 한다. 1918년 기록에 의하면 당시 웅천도자기 기술자 100여명이 납치 되었다고 한다.1897년 11월 25일 웅천면에서 아전 출신 주현성의 막내아들 주기철이 태어 났다. 원래 이름은 주기복 이었는데 오산학교에서 세례를 받은뒤 주기철로 계명했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헌병대에 연행 되었다. 1938년 신사참배를 거부해서 일본 경찰에 검거 되었고 감옥에서 목숨을 거두었다. 1944년 4월 13일 이다.면회를 온 아내에게 신앙의 양심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뜻을 굽히지 않았던 투사의 마지막 남긴 말은 " 여보, 따뜻한 숭늉 ..
벚꽃의 꽃말은 뛰어난 미인 이다. 개화시기는 4월 초순에서 중순이고 제주도 한라산과 해남 두륜산이 원산지 이다. 장미과에 속하는 이 식물의 개화일은 한 개체 중 몇 송이가 완전히 피었을 때를 말하므로 꽃이 만개하는 시기와 약간은 다르다. 경남 창원 진해는 세계에서 벚나무가 가장 많다하여 `벚꽃 1번지` 로 불린다. 수십만 그루의 왕벚쫓이 일제히 피어오르면 온 천지가 솜사탕 처럼 하얗게 뒤 덮힌다.진해는 도시 전체가 벚꽃으로 명소를 찾는다는 것이 무의미하다. 장복산고개, 안민고개, 시루봉, 제황산공원, 여좌천, 해군사관학교 그 중 시루봉은 꽃눈을 맞으며 산책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진해시 남동쪽 산줄기에 볼록 솟아난 산봉우리가 있는데 진해시 자은동과 웅천 1동에 걸쳐 있는 산이름이 웅산(635m) 이다..
중국은 전탑, 우리나라는 석탑, 일본은 목탑의 나라이다. 나라별로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재료를 이용해서 탑을 세웠겠지만 그 만큼 세 나라에서 탑이 많이 세워졌다는 뜻이다.탑의 어원은 산스크리트어 stupa 라 한다. 이것이 음역되어 '솔도파' '졸탑파' '탑파' 에서 줄여서 '탑' 이라 부른다. 석가 입멸후 다비를 하고 나온 사리를 모신 건조물이 탑이다. 부처의 몸에서 나온 진신사리를 여덟 나라에 나누어 각각 탑을 세웠고 이를 근본8탑 이라고 한다.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Ashoka BC273~232) 대왕은 무력으로 인도를 통일하여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한 군주가 되었다. 아쇼카 대왕은 마지막 정복 전쟁인 칼랑가 전쟁에서 보병 60만, 말을 탄 기병 10만, 코끼리 부대 9천마리를 기끌고 칼랑가국을 초토..
신라시대 널리퍼진 불교는 목욕문화에도 영향을 미쳤고 이는 고려시대까지 그대로 유지 되었다. 사찰에 가기전에 목욕재개 하던 관습은 민간에도 영향을 미쳐 일상적으로 목욕을 자주 하는 풍습이 정착되었다.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에 왔을때 1123년 그가 기록한 책 [고려도경] 에 보면 고려인의 목욕풍습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옛 사서에 고려에 대하여 실었는데 그 풍속이 다 깨끗하다 하더니 지금도 그러하다. 그들은 매양 중국인들이 때가 많은 것을 비웃는다고 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목욕을 하고 문을 나서며, 여름에는 날마다 두번씩 목욕을 하는데 시냇가 가운데서 많이 한다. 남자 여자 구분이 없이 의관을 언덕에 놓고 물 구비에 따라 옷을 벌거벗되, 모두가 전혀 괴이하게 여기지 않았다."고려인들은 집..
봉산에 있는 소나무 한그루를 몰래 베면 곤장이 60대의 형벌에 처해 졌다. 국방과 관련된 송정과 봉산인 만큼 그 관리와 처벌은 엄격했다. 1744년 [속대전] 에 보면 봉산의 큰 나무 10그루를 베면 사형, 9그루 이하는 지방이나 섬으로 유배를 보냈다. 나무 한그루는 곤장이 60대 였다. 18세기 말부터 숲을 조성하는 조장 정책이 도입되었다.국방을 담당하는 수사가 봉산의 관리도 맡아 했다. 조선왕조는 전국에 소나무가 잘 자라는 635곳을 봉산으로 지정해서 벌채를 금했다. 1732년 경상도에 흉년이 들어 7개읍의 백성들이 몰래 봉산의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었다. 이 일로 해당읍 수령들은 파면 당했다. 이에 경상감사 조현종은 수령들의 구휼행정에 관계된 부분은 정상참작을 부탁했으나 국방상의 이유로 원칙을 고수..
1991년 부터 2023년 까지 32년간의 수종 선호도 조사에서 소나무는 1위를 차지 했다. 50% 이상이 소나무를 지지 했고 2위가 은행나무, 3위는 단풍나무이다. 일반국민과 전문가 집단에서 공히 소나무는 1위이다. 좋아하는 이유는 경관적 가치 때문이다. 국민들은 경관적 가치를 우선시 했고 전문가 집단은 인문적 가치와 환경적 가치를 고려했다.우리나라는 산림이 국토의 63%를 덮고 있다. 그 산림의 4/1 이 소나무와 곰솔이다. 유교적인 사상과 조선후기의 송정 정책으로 정부가 소나무를 보호해 왔고, 조선후기 온돌의 전국적 보급으로 연료를 위한 과도한 채취로 지면이 노출될 정도 였는데 소나무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비교적 잘 자라는 수종이다.중국의 유교경전에 " 천자는 소나무를 구목으로 심고 , 제후는 잣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