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원도심, 관부 연락선, <사의찬미> 윤심덕

1.부산원도심

중앙동, 대청동, 동광동, 광복동, 남포동 일대를 말한다.

개항 후 왜관에 일본인 거주가 늘어나면서 해안 매축공사가 시작된다.
제1부두(북항)는 1902~1908년까지 북만매립공사, 영선사 척평공사(1909~1912)로 건설되었다.
북항재래부두 개발공사란 연안부두, 국제부두, 중앙부두, 1~4 부두로 일제시대때 만들어져 100년이 지났다.

2005~2030년 마무리 예정이다.


2. 관부연락선(관부철도연락선),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

1905년 처음 취항한다. 일본 산요철도와 경부선을 연결한다 해서 '연락선' 이라고 부른다. 
초량과 서울영등포 연결하는 경부선 철도가 1905년에 건설 되었고, 그해 9월10일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는 

관부 연락선이 뜬다.

관부 연락선을 타고 떠난 분이 60만이다. 1905년 취항 후 접안시설 없어서 초량 앞바다에 정박 후 소형선박을 통해서 화물이나 승객이 부두로 이동했다. 제1부두가 완성되면서 바로 접안이 가능 해지고 이후 13척의 연락선이 취항한다.

화객이 11척, 화물이 2척, 고려환, 신라환, 경복환, 덕수환, 청경환, 흥인환, 천신환...태평양 전쟁 막바지에 미국이 현해탄을 장악해서 일본의 상선, 화물선이 공격을 받는다. 1943년 9월 시모노세키 출발한 관부연락선 곤륜환이 공격 받아서 승객 544명이 사망한다. 1945년 8월 24일 오키시마 침몰, 마이즈루 폭발, 인명피해가 많았다.

1945년 해방 후 운항을 멈췄던 '관부연락선' 부관페리는  25년뒤 1970년 6월 16일 승객 397명과 자동차 7대를 싣고다시 들어 온다. 첫 입국자는 아베총리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였다.


3. 극작가 김우진, 윤심덕의 <사의 찬미>는 루마니아 작곡가 이온 이바노비치의 <다뉴브강의 잔물결> 에 김우진이 가사를 붙였다. 이 노래는 윤심덕이 부른다. 윤심덕은 1897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숭의여학교, 경성여보고를 나왔고 조선총독부가 음악에 재능있는 사람을 선발해서 일본의 우에노 음악학교에 유학을 보낸다. 졸업후 귀국독창회 YMCA에서 열린 '토월회' 연극에서 주연을 맡기도 한다. 1926년 일동축음기 주식회사가 발매한 <사의 찬미>는 일본에서 녹음 되었다.
 당시 유부남 이었던 김우진은 윤심덕과 사랑에 빠진다. 녹음 후 시모노세키에서 관부연락선을 타고 귀국하면서 쯔시마(대마도) 부근 바다에 둘은 투신한다. 해방 후 항로가 폐쇄되고 1964년 부산 오사카 아리랑호, 1970년 부관페리호 가 다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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