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중구

중앙동, 동광동, 대청동, 보수동, 부평동, 광복동, 남포동, 영주동 등이다. 10개동이다.

1. 광복동 : 숙종 4년(1678)에 설치된 초량왜관이 고종 13년(1876) 강화도조약 체결될때 까지 198년간 존속한 곳이다. 광복동이라는 동명은 개칭때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번창했던 곳에서 조국의 광복을 맞아 그 뜻을 기린다는 의미에서 광복동이라 이름 붙여졌다.


2. 대청동 : 초량왜관 북쪽 담장 밖에 있던 연향대청에서 유래했다. 연향대청은 일본에서 온 사신을 맞이하여 동래부사나 부산 첨사가 연회를 베풀던 곳으로 연대청이라 불렀다. 현재의 광일초등학교자리 이고 강점기때는 대청정으로 불렸다. 이후 광복후 대청동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3. 남포동 : 용두산 아래 내려다보이는 남포 일대의 바닷가를 자갈치라 한다. 자갈치는 본래 자갈+치 로 구성된 지명으로 매립 이전에 명명된 것이다. 원래 주먹만한 옥돌자갈들로 이루어진 수려한 해안 이었다. 자갈 언저리라는 지형적인 특징을 말한다.


4. 동광동 : 조선후기 초량왜관의 동관이 위치했던곳이다. 동관은 일본에서 오는 배가 정착하는 곳이며, 왜관의 최고 책임자 관수의 집과 한일무역 거래가 이루어진 개새대청 있었고 일제시대에는 본정(本町) 이라 불렀다. 동관동으로 불러야 하지만 발음이 어렵고 광복동의 동쪽에 위치한 점을 들어 동광동 이라한다.


5. 보수동 : 보수동은 보수천(寶水川) 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이전에는 법수천(法水川) 이라 불렀다. 법수라 함은 불법계에서 중생의 번뇌를 씻어 정하게 한다는 것을 물에 비유하여 중생의 마음의 번뇌를 씻어 주는 물이란 뜻이다. 오래전 구덕사라는 절이 있었고 18세기 중엽 왜인들의 약탈을 못이겨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고 하고 그 터는 폐사지가 되었다. 1880년 우리나라 처음으로 보수천 상류로 부터 대나무 통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시설만들었고, 1886년 나무통으로 물을 끌어모으고 1894년 보수천 상류에 물을 모으는 둑인 집수언(集水堰)을 만들고 자연여과 장치를 시공하였다. 거류지 가까운곳에 배수지 설치, 상수도의 기원이 되었다.


6. 부평동 : 보수천 하구 일대는 갈대밭과 풀밭이어서 옛 부터 샛디라고 불렀다. 샛디는 초량(草梁)이라는 말이다. 현재의 초량을 신초량, 원래의 초량은 구초량 으로 불리게 되었다. 부평(富平) 의 부는 부(富)와 같은 뜻에서 사용한 것이다. 평(平)은 터라는 뜻으로 샛디의 디와 통하는 글자로서 일제시대에는 부평정 이라고 불렸다. 1910년 설립된 부평시장은 1915년 부산부에서 관리하였다. 이시장은 인근 70리까지 세력이 미치는 조선 최대의 공설운동장이었다. 이 거리를 백풍가라고 불렀다. 항상 백의를 입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일상용품을 구입하러 백의인(白衣人)의 집합장소 라 하여 백풍가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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