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정리

(1)

용두산 포함해서 10만평이 전관거류지(동광, 중앙, 광복, 남포) , 부산항은 1902~1913년까지 매축공사가 행해 진다. 자갈치, 중앙동, 부산진, 자성대앞, 55보급창고, 감만동 일제시대때 1~4 부두까지 만들어졌다. 1910년 인구 4만3천명, 패망무렵 35만명이 된다. 1925년 진주에서 경남도청이 이전해 왔다. 한국전 당시 유엔군과 구호품 운송에 용의 했다.
1970년 중반까지 1~4부두 사용, 1974부터 자성부두, 2001년 부터 우암, 감만, 신선대부두 가 컨테이너 전용부두로 쓰인다. 1980년 부산도시고속도로, 1994년 동서고가도로,1963년 직할시 로 승격했다.
영도 대평동, 1912년 대평초등학교, 1925년 다나카 조선소, 60여개의 조선소가 있었다. 1960~1980년대 까지 선박수리업의 최전성기, 1937년 조선중공업(한진중공업)
1931년 이후 부산항에 대략 15개의 어묵공장이 있었다. 인천, 함흥에서 유통 됐다. 제재염 공장이 많았고 주문솥 공장도 많았다. 우리나라 연안 고등어의 90%가 부산항에서 채집되고 전국으로 간다. 부산어시장 판매량의 80%가 고등어, 부산공동어시장은 전국 수산물 위판의 30%를 차지 한다.

(2)

부산항은 북항, 남항, 신항, 감천항, 다대포항을 말한다.
최초의 근대적 등대는 팔미도 1902~1903
1906년 태종대 영도등대
1909년 가덕도 등대
1937년 오륙도 등대
부산인구 100만명은 바다와 연관된 일하며 살아간다. 한국의 무인도는 전체3천개가 넘는다. 현재 원양어업을 담당하는 항구는 감천항, 감천부두, 부산항에는 하루에 8백~1000척의 배가 들어오고 주요 정박지는 영도 태종대 앞바다와 송도 해수욕장, 2020년 한해 해상사고89건, 2019년 2월 용호부두에서 출항하던 러시아선박이 광안대교 들이 박았다. 선장이 술이 취해서, 용호부두와 광안대교거리 100미터, 선박길이 100미터, 요트충돌후 광안대교충돌, 불꽃축제할때 관광객태운 배가 100척이상 다리주위로 몰린다.
1950년대 중반~1969년 부산항을 중심으로 이즈하라 특공대 밀수가 성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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