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대(二妓臺)와 내영지(萊營誌)

임진왜란이 끝나고 258년이 지난 1849년 10월, 경상 좌수사 이형하가 지금의 수영(水營)으로 부임해 왔다. 이듬해 1850년 8월 20일 정3품 통정대부 행절도사 승정원우부승지로 제수되어 한양으로 올라가기 까지 동래부 좌수영 전반에 걸친 내용을 기록으로 남겼다.
내영지(동래영지) 서문에는 개인의 공적이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다는 점을 안타까워 하는 심정을 토로 하면서 저술의 목적을 밝힌다. 족인, 현도, 책실(비서) 의 도움으로 기록 했다 전한다. 서문에 좌수영성 군사기록과 함께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분들의 기록에 기첩과 무명의 백성에 이르는 죽음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두 기녀가 왜장을 끌어안고 투신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듣게 된다.
여기서 '기첩' 이란 기생 출신의 '첩' 인지 특정인 의 '애첩' 인지 '관기' 까지 포함된 대명사 인지는 불분명하다. 단, 장수의 이름을 나열한 후 바로 기첩을 언급한 점으로 미루어 좌수사로서 두 여인의 죽음이 왜군의 전력에 영향을 미칠 만큼 컸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이형하의 내영지(萊營誌) 산천조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전한다.
" (左營南十五里 上有二妓塚云) 좌영남 시오리 상유이기 총운
좌수영 남쪽 15리에 기생의 유택으로 추정되는 두 기의 무덤이 있다. "

15리는 대략 6km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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