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륙도 포진지, 가덕도 포진지

 부산 근교에 만들어진 포진지는 가덕도(외양포), 오륙도(장자등), 장승포(지심도)가 있고 진지로는 민락동에 한 곳 있다.

 

장자등 오륙도 포진지
세계1차 대전으로 세계와 척을 진 일본이 공해상의 요지를 요새화 하기 시작했다.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하고 강대국들이 본토를 위협 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이기대 해안선을 갈라서 한국인 노역자를 동원해서 16년간에 걸친 공사끝에 완성했다. 산자락을 잘라서 콘크리트 구조의 포진지를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어서 소나무를 심어서 이전과 같은 산의 형태로 위장했다. 식민지 지배부터 해방까지 소나무가 울창해서 하늘에서 봐도 식별이 어려웠다. 일제시대 만들어진 포진지 6개소 중 2곳은 해방 후 파괴었고 지금은 4개소가 남았다.
1905년 이후 요새화 되었다. 410mm 포진지 4개소 있었으나 지상 3개소 사라지고 1개소 여기 남았다. 부지면적 5천평(축구장 2개 반) 지하 5백평으로, 600명 6개월 간 노역해서 만들어 졌다. 주둔병력 1개 대대 였다.

 

외양포 가덕도 포진지

외양포는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동 남단에 위치한 강 입구에 해당하는 자리다. 1904년 러.일 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은 외양포를 대한해협 일대의 군사거점 확보를 위해서 임시 군사기지로 설정하고 민가 64호를 강제로 퇴거시켰다. 같은 해 8월 일본군은 여기에 해군가근거지를 구축하기 위해 제3 임시 축성단을 파견해서 12월에 공사를 완료하고, 진해만 요새 포병대대 제 2중대를 먼저 배치하고 이어 포병대 본부를 이전해서 대대를 증강배치했다. 이로서 외양포는 러시아 함대와 해전이 준비된 군사기지가 되었다.
1905년 5월에는 일본군 유수제 4사단에 편성된 진해만요새사령부가 이전해서 대대규모 이상의 포병부대 주둔지로 확대되어 여기가 일본군 진해만요새 사령부의 발상지가 되었다. 1909년 8월에 사령부눈 마산으로 이전하고 1914년 11월에는 진해군항으로 이전해서 외양포요새는 중포병대대주둔지로 격하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45년 일본의 패망까지 유지 되다가 광복 후 이주민들이 들어와 군막사등의 시설등을 개조해서 살았다. 현재 외양포 마을에는 일본군이 만든 막사, 창고, 우물, 배수로 등의 흔적이 있고 주변산의 입구와 정상부에는 포진지, 화약고, 교통로, 관측소, 산악보루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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