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10월 24일 기장군 임랑에서 태어났다.
6남매중 장남 이었다. 1945년 일본 와세다 기계공학부 진학했다. 2학년 과정만 마치고 귀국했다. 1947년 육군사관학교 입교해서 사관생도 시절 박정희를 만났다. 박정희는 탄도학과 교관이었다. 탄도학 강의를 진행하다가 막힘없이 문제를 푸는 박태준을 박정희가 눈여겨 본다. 인연이 되었고, 1961년 5,16당시 박정희는 일이 잘못되면 가족을 박태준에게 부탁한다. 그럼에도 박태준은 당시 지휘부에 참석했다. 1961년 단국대 입학, 정치학부 졸업한다. 당시 육군 현역으로 근무하던 사람들이 정식학위과정을 이수하지 못했었다.
1963년 36세 나이로 전역한다. 대한중석 사장으로 취임, 흑자기업으로 전환시킨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대일 청구권으로 포철을 세울 기금을 마련한다.
부사관이상이면 당시에는 군모포 한장씩은 쟁여 뒀다, 박태준은 없었다. 유일하게 가져온 군수품은 군용반창고 였다. 어머니가 고된일로 손바닥이 갈라지셔서 어머니 혼잣말 하시는걸 듣고 손에 감아드렸다.
부대 중대장 시절 군급식 김치에 톱밥에 색소 입힌 고춧가루를 쓰던 군납업자 찾아내고
양동이에 물가져와서 풀어 봤더니 톳밥과 색소 였다. 군납업자가 돈 봉투 내밀자 죽여버리겠다고 호통치며 내쫓았다.
이후 믿음직한 군납업자를 다시 찾았다.
결혼후에도 사택에 당번병을 두지 않았다. 야간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감기에 걸린 큰 딸아이가 많이 아팠다. 부대차는 개인 용무로는 쓸수가 없었고 통행금지가 해지 되기를 기다리다 큰 아이가 죽고 만다. 둘째가 아팠을때 톳밥사건이후 새로 알게된 군수업자가 차를 빌어줘서 병원에 갈수 있었다.
*1950년 6.25참전(23세) 미아리전투, 형산강전투..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무공훈장만 4개이다. 1954년 육사 수석졸업 1966년 대한국제 제철차관단(KISA) 구성, 제철소 건설 자금 확보를 위한 '하와이구상'
*1968년 포항제철 사장취임, 1973년 6월 9일 첫 고로 첫 출선
*11대~14대 전국구 국회의원, 15대 포항북구 국회의원 (54세)
*1985년(58세) 포항공대개교
*1987년(60세) 철강업계노벨상 베세머상
*1992년(65세) 포항제철 명예회장
*2000년 제32대 국무총리
*2011년 12월 13일 84세로 작고, 훈장만 16개
**개잎갈나무: 히말라야삼나무, 히말라야시더
잎갈나무는 가을에 나뭇잎을간다. 이 나무는 잎을 갈지 않는다, 그래서(개)를 붙였다.
설송 이라 부른다. 시더류 나무는 고대로 부터 종교목이다. 수형이 아름답고, 관상용으로 가치가 높아서 3대 공원수로 불린다. 빨리크게 자라고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건축가 조병수 작품이다. 망미동 F1963 전시관과 비슷하다. 도심속의 기념관은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중정을 2개 두고 물을 넣어서 차분함을 주었다. 세미나실의 나무와 입구쪽 철강의 갈색은 뒷쪽의 녹지와 보색을 이룬다. 벽체의 연하늘 메탈은 작가가 즐겨 쓰는 소재이다. 곡선은 쇳물의 흐르는 곡선을 나타낸 것이다. 중정의 물은 빛과 물, 체험적으로 느끼는 공간, 길을 통한 선율의 건축, 과정으로서의 길, 열정의 길, 통합의 길, 보여주고자 하는 곳이 아닌 지역사회와 공존하는곳, 열려 있고, 경험되고 영혼이 살아 있는곳, 빛과 물이 바닥에 체험적으로 와 닿는 공간을 구상했다.